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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④] 미국서 굴욕감 맛봤던 정몽구..그가 결국 빼어든 칼날은?

Hyundai
2020-12-24 14:29:02
현대자동차그룹이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정몽구 회장에 이어 정의선 회장으로 경영 체제가 바뀌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 전기차와 수소차, 미래 모빌리티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난 20여년간 ‘품질’을 앞세운 ‘뚝심경영’으로 변방(邊方)에 머물렀던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높였다면, 정의선 회장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해야만 하는 중책을 맡게됐다. 데일리카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고집스럽게 펼쳐왔던 그만의 경영철학을 되살펴보고, 정의선 회장이 추구해야 할 브랜드의 창조적 파괴와 진화를 위한 또다른 ‘디자인 경영’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출처: 포춘)


[데일리카 하영선 기자] 1997년 11월 김영삼 정권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이 부족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을 요청하고, 지원금을 받는다. 온 국민들은 외채를 갚기 위해 귀고리나 반지 등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던 건 지금도 생생한 일이다. 외환 위기와 함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간의 구조조정 바람도 거세진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업체간 생산시설 과잉으로 공급은 수요를 크게 앞선데다, 소비 심리는 극도로 위축되는 등 ‘트리플 악재’가 지속된다.

현대차는 결국 법정관리에 놓여있던 기아차를 1998년에 인수합병한다. 또 32년간 현대차를 이끌어왔던 정세영 회장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현대차의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정주영 회장의 장남인 정몽구에게 넘긴다.

정세영 회장은 이임식에서 사가(社歌)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건 그가 2000년 내놓은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현대차에 대한 애착을 여실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니와 엑셀이라는 고유 모델을 내놓은 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셈’이니 그만의 업적으로 기록된다.

바통을 이어받은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아우르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총수를 맡게된다. 정세영 회장과는 달리 우직하면서도 뚝심을 내세우는 경영 스타일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차별적이다. ‘뚝심 경영’이라는 말도 이 때부터 나온다.

현대 그레이스

정 회장은 취임 후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는다. 그는 공장의 자동차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우고, 승합차 그레이스의 슬라이딩 도어를 스무번 이상 ‘쾅쾅’ 내리찍은 끝에 차문이 결국 떨어져 나갔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자동차 품질에 신경을 쓰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정 회장은 해외 수출현장도 직접 챙기는 ‘행동파’였다는 말도 나온다.


당시 ‘자동차 왕국’으로 불렸던 미국시장을 점검하기 위해 기아차의 미국 LA 지사를 찾는다. 이곳에는 한국인 사장과 부사장, 주재원을 비롯해 파견 직원 등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원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이 자리서 “미국에서 차를 파는데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은 거야?”라며 스쳐지나듯 지적한다. 이 말 한 마디에 10여명의 기아차 주재원들이 귀국길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자동차 부품사나 수입차 업계로 무대를 옮겨 활약한다. 오늘날 수입차 발전을 이끈 멤버로 불린다.

1997 기아 세피아

기아차는 세피아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CUV(크로스오버) 모델인 스포티지를 미국시장에서 팔았는데, 판매 가격은 일본 경쟁 브랜드의 소형차 가격보다도 낮았다. 1만 달러를 훨씬 밑돌았다. 성능 대비 가격이 낮았으니 타다가 차가 고장나면, 굳이 고쳐서 타지 않고, 아예 새차를 다시 사면 될 정도였다. 시쳇말로 ‘가성비’는 뛰어났다는 얘기다.

기아차는 “피자를 더 빨리 배달하는데다, 차를 사고 남는 여윳돈으로 럭셔리한 캠핑을, 또 맛있는 음식을 즐기자!”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이 광고는 전문가 평가에서 대상을 받는다. 광고 대상을 차지했으니 즐거운 일이지만, 속 내용을 살펴보면 웃지못할 안타까움도 묻어나는 대목이다.

당시만해도 현대차는 미국 자동차 소비자들로부터 리콜 요청이 쇄도하는 등 품질에 대해 혹평을 받았다. 정 회장은 미국 딜러들로부터 “더 이상은 현대차를 못 팔겠다”는 하소연도 들어야만 했다. 회장으로서 굴욕감도 맛봤을 터.

NBC의 '쟈니 카슨 쇼'나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 등의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은 현대차를 구매한 결정과 같은 것으로도 비유하는 정도였으니, 현대차라는 브랜드 밸류는 나락(那落)으로 추락한 셈이었다.



정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제1의 경영 목표로 ‘자동차 품질’을 꼽는다. 또 미국시장에서는 ‘10년·10만마일 워런티’를 표방한다. 당시만 해도 ‘2년·2만4000마일 워런티’가 일반적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도전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이를 보고 “그럼 우리는 봉이냐?”며 ‘역차별’ 논란도 거세게 불거진 때다.

일본의 경쟁 브랜드인 토요타나 혼다 등에서는 정 회장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미친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차 브랜드들도 슬그머니 ‘5년·6만마일 워런티’로 정 회장의 ‘미친’ 보증정책을 따른다.

이후, 정 회장은 2002년 들어 품질총괄본부를 만들고, 글로벌 시장에서 품질개선 활동에 총력을 기울인다. 200여개 국가에 수출되는 현대기아차의 품질문제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정 회장은 2008년 들어 지금까지의 품질경영 기법과는 차별화된 ‘창조적 품질경영(Creative Quality Management)’을 선포한다. ‘GQ(Global Quality)-3355’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였다. 제품 품질은 3년내 세계 3위, 브랜드 품질은 5년내 세계 5위를 의미한다. 당시만해도 그저 ‘황당한 꿈’으로만 봤던 게 업계의 시각이었다.

현대 EF 쏘나타

정 회장은 2015년 11월4일,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해 BMW, 아우디, 렉서스, 인피니티, 재규어, 캐딜락 등과 직접 맞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Genesis)’를 출범시킨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런칭 행사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참석한다.

정의선 부회장은 “제네시스는 급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 현대차그룹의 도약과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정 부회장은 당시 향후 5년내 중형 럭셔리 세단, 대형 럭셔리 SUV, 고급 스포츠형 쿠페, 중형 럭셔리 SUV를 순차적으로 내놓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모두 이뤄졌다. G70, G80, G90, GV70, GV80 등이 바로 그 모델들이다.


현대기아차는 2016년 들어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Power)사가 발표한 신차품질조사(IQS)에서 33개 전체 브랜드 가운데, 기아차가 1위, 현대차가 3위에 오른다. 제네시스 역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2018년에 이어 2019년까지 2년 연속으로 고급 브랜드 부문서 전체 1위를 차지해 세계를 놀래킨다.

제네시스 G80

현대차와 기아차, 제네시스 브랜드 등 현대차그룹의 신차 품질이 이제는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잖다는 게 기자의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0년에는 연간 243만대를 판매하는데 그쳤지만, 2004년에는 316만대, 2008년에는 418만대를 출고하면서 창사 이래 누적판매 5000만대를 기록한다. 또 2012년에는 712만대, 2016년에는 779만대를 판매해 현대차 창사 이후 49년만에 누적판매 1억대를 돌파한다.

참고로, 1억대 판매 돌파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경우 1968년 창립 이후 59년, 일본 토요타의 경우 1935년 출범 후 61년만에 기록한 수치다.

정세영 회장이 ‘포니’와 ‘엑셀’이라는 고유 모델을 개발한 점, 정몽구 회장이 우직하게 뚝심만으로 ‘품질경영’에 올인해 오늘날 현대차그룹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발전에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1886년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 이후, 지금까지 134년이라는 자동차 역사 중 정세영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유명 브랜드의 자동차 기술을 따라가는 것만해도 버거웠던 게 사실이다. 짧은 자동차 역사라는 한계 때문으로 풀이된다.

GV70


그러나 이제 자동차 산업은 태초의 ‘빅뱅’에 비유하듯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출발 선상에 놓여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가 강조된 혁신적인 자동차 기술을 토대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선도해야만 하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때이다. 이는 정의선 회장의 몫이기도 하다.


ysha@daily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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